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(문단 편집) === [[제1차 세계 대전]] === [[1차대전]]이 발발하자 [[1914년]] 제8군 사령관으로 승진하여 [[갈리치아]](현재 [[우크라이나]]-[[폴란드]] 접경) 방면에서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군]]을 격파하였다. [[러시아 제국군]]이 당시 (주로 [[독일 제국군]]에게) 연전연패했기 때문에 이는 매우 돋보였고, 이 공적으로 성 게오르기 훈장을 수훈받았다. [[1915년]]에는 다시 오스트리아-헝가리군을 밀어붙이고 [[카르파티아 산맥]] 근처까지 진격하여 [[기병]][[대장(계급)|대장]]으로 승진하였다. 그러나 러시아군은 다른 전선에서 연전연패했기 때문에 돌출부가 형성되어 위치상으로 위험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후퇴하였다. 브루실로프도 계속된 공세를 해보았지만, 독일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. [[펠릭스 그라프 폰 보트머]]는 러시아군의 공세를 계속 막아버렸다. 그러나... '''[[1916년]] [[3월 29일]], 남서전선군 총사령관에 부임하여 [[브루실로프 공세|독일군과 오스트리아-헝가리군에 대한 공세]]를 실시한다.''' 이 공세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진격을 무려 400km나 하고 40만명의 [[포로]]를 획득하는 등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나, 북부의 중앙전선군이 제대로 조공을 못하여 더 이상의 진격은 불가능해졌고, 동부전선의 승패를 되돌리는데는 실패한다. 브루실로프 본인도 큰 피해에 비해 유의미한 전략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. 어쨌든 이 공세는 1차대전에서 연전연패하던 러시아군에게 거의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. 이 공적으로 브루실로프는 다이아몬드 게오르기 검을 하사받고, [[러시아 제국군]]의 거의 유일한 [[명장]]으로 각인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